40년의 그림자
1976년부터 1986년까지,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한 사람을 두려워했다. 미디어는 그를 East Area Rapist, Original Night Stalker, 그리고 후일 Golden State Killer라고 불렀다. 13건의 사건과 50여 건의 다른 중대 범죄. 40년 가까이 그의 정체는 미해결이었고, 2018년 4월 24일 단 한 가지 도구로 풀렸다.
그 도구의 이름은 GEDmatch. 일반인이 본인의 DNA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등록하는 가계 데이터베이스였다. 이 글은 그 4개월의 과정과, 그것이 미국 형사 수사에 만들어낸 새 시대를 정리한다.

1976-1986 캘리포니아
이 사건의 시간선은 길고 복잡하다. 1976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지역에서 한 연쇄 범죄가 시작됐고, 1980년대까지 다양한 지역으로 확장됐다.
- 1976-1979: 새크라멘토 지역 — “East Area Rapist”로 불림
- 1979-1981: 베이 지역 확장
- 1980-1986: 남부 캘리포니아 확장 — “Original Night Stalker”로 불림
- 1986: 활동 갑자기 중단
한 사람의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각 카운티 경찰이 따로 수사했기에,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이 후일 DNA 분석으로 확인됐다. 1996년 한 형사가 처음으로 “이 모든 사건이 같은 한 사람의 짓”이라는 가설을 제시했고, 2001년 DNA 비교로 그 가설이 확정됐다.
1986년 이후 활동이 갑자기 멈췄고, 그 후 30년 동안 그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일부 수사관들은 “그가 죽었다”고 추정했지만, 시신 발견이나 사망 증명이 없었기에 수사는 공식적으로는 계속됐다.
폴 홀스라는 형사
40년 추적의 결정적 인물은 콘트라코스타 카운티 보안관 출신 형사 폴 홀스(Paul Holes) 였다. 그는 1994년 사건 자료를 처음 접한 후 평생을 이 사건에 바쳤고, 24년 동안 끈질기게 추적 했다.
그는 “내 평생 단 하나의 사건을 풀 수 있다면 이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 사람이었다. 그의 24년 동안 셀 수 없는 단서와 막다른 길이 있었다. 800명 이상의 용의자를 조사했고, 모두 제외됐다.
2018년 그의 은퇴를 한 달 앞두고, 새 도구가 등장했다. 그것이 GEDmatch였다.
2017년 12월 GEDmatch 업로드
2017년 12월, 폴 홀스와 FBI 변호사 스티브 크레이머(Steve Kramer)는 한 가지 시도를 했다. 1980년 사건 현장에서 보존됐던 DNA 샘플을 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형태로 변환해 GEDmatch에 업로드한 것이다.
GEDmatch 는 어떤 도구인가? 일반인이 본인의 DNA 데이터(주로 23andMe 또는 AncestryDNA)를 자발적으로 등록하는 공개 가계 데이터베이스다. 사람들이 “내 친척을 찾고 싶다” 또는 “내 가계도를 만들고 싶다”는 목적으로 등록한다. 2018년 시점 약 100만 명의 데이터가 등록되어 있었다.
형사 수사 목적 사용은 매우 새로운 시도였고, 학계와 시민단체의 윤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GEDmatch는 “공개 데이터베이스”였기에 법적으로 사용 가능했다. 폴 홀스 팀은 “이 시도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40년의 미해결 사건을 풀기 위한 마지막 시도”라고 판단했다.

4개월의 가계도
GEDmatch는 즉시 답을 주지 않았다. 검색 결과는 가해자 본인이 아니라 “3촌 또는 4촌 친척” 일치 였다. 즉 가해자 본인은 데이터베이스에 없었지만, 그의 친척이 자발적으로 등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친척 일치를 시작점으로, 가계학자 바버라 레이-벤터(Barbara Rae-Venter)와 동료들이 4개월 동안 가계도를 재구성 했다.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 3-4촌 친척 후보 약 5-10명 식별
- 그들의 가계도를 위로 올라가 공통 조상 찾기 (보통 1860년대까지)
- 그 공통 조상으로부터 아래로 모든 후손 추적
- 수백 명의 후손 중 “1976-1986 캘리포니아 거주 + 40-60대 남성” 조건 적용
- 약 25명 후보로 좁힘
-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 72세 전 경찰관 조셉 제임스 디안젤로
4개월의 작업은 미국 가계학 분야에서 유례없는 정밀 작업이었다. 디안젤로는 1973-1979년 캘리포니아 경찰관이었고, 정확히 사건 발생 지역에 거주했다.
디안젤로의 차문 손잡이
가계도가 디안젤로를 가리킨 후, 수사관들은 그의 DNA를 직접 확보해야 했다. 그러나 영장 없이 직접 채취는 불가능했기에, 그들은 그가 공공장소에 남긴 흔적을 활용했다.
2018년 4월 18일, 한 수사관이 디안젤로의 차문 손잡이에서 DNA 샘플을 채취했다. 그가 차를 만진 후 손잡이에 남은 피부 세포였다. 미국 법체계에서는 “공공장소에 남긴 흔적은 사생활이 아니다”라는 원칙이 있어, 영장 없이 합법적으로 수집 가능했다.
며칠 후에는 그의 쓰레기통에서 휴지 한 장을 회수했다. 쓰레기통이 도로변(curbside)에 있었기에 역시 공공 영역으로 분류됐다.
두 샘플 모두 1980년대 사건 현장 DNA와 정확히 일치 했다. 통계적으로 “우연의 일치” 가능성은 사실상 0이었다.

2018년 4월 24일 체포
2018년 4월 24일,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경찰이 72세 디안젤로를 자택에서 체포했다. 그는 전직 경찰관이자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로, 평범한 은퇴 노인이었다.
이웃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시트러스 하이츠의 한 평범한 교외 동네에 30년 이상 살고 있었고, 손자들이 자주 방문하는 “좋은 할아버지”로 알려져 있었다. 같은 날 캘리포니아 검찰은 그에게 1급 살인 8건 을 기소했고, 후속 조사로 다른 카운티의 사건들도 추가됐다.
그는 체포 당시 잠옷 차림이었고, 별다른 저항 없이 경찰을 따라갔다. 첫 신문에서 그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묻기도 했고, 일부 인터뷰에서는 “내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2020년 유죄 인정
재판은 코로나19로 지연됐고, 2020년 6월 29일 디안젤로는 모든 살인과 납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사형 대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받기로 합의했다.
75세에 캘리포니아 코르코란 주립 교도소(Corcoran State Prison)에 수감됐다. 형 선고 공판에서 그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해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피해자 가족들의 진술을 듣기만 했다. 판결문은 약 700페이지에 달했고, 캘리포니아 사법 역사상 가장 긴 판결문 중 하나였다.
13건 살인 외에 50건 이상의 다른 중대 범죄에 대해서도 책임이 인정 됐다. 단 일부 사건은 시효(statute of limitations)가 만료되어 기소되지 않았다.
유전 계보학 시대의 시작
이 사건의 진짜 의미는 디안젤로의 체포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유전 계보학(forensic genetic genealogy)“이라는 새 수사 방법의 첫 대형 성공 사례 였다.
2018년 이후 미국 전역에서 약 200건 이상의 cold case 가 같은 방법으로 풀렸다. 일부 주요 사례:
- 1981년 “빌리지 부랑자” 사건 — 2019년 GEDmatch로 해결
- 1986년 “Buckskin Girl” 신원 — 2018년 GEDmatch로 식별
- 2019년 위스콘신 살인 사건 — 같은 방법으로 1주일 만에 해결
그 흐름은 지금도 계속된다. 매년 새 cold case가 같은 방법으로 풀리고 있고, 일부 추정에 따르면 미국 내 미해결 사건의 약 30%가 향후 10년 안에 유전 계보학으로 해결 가능하다.

윤리 논쟁과 법제화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윤리 논쟁도 함께 시작됐다. 주요 쟁점:
첫째, 친척의 비자발적 연루. 일반인이 본인의 가계 추적을 위해 GEDmatch에 등록했는데, 그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친척의 형사 수사에 사용된다.
둘째, 영장 없는 검색. 미국 헌법은 “부당한 수색”을 금지하는데, 가계 DB 검색은 영장 없이 진행됐다.
셋째, 잘못된 식별 위험. 폴 홀스 팀도 처음에는 잘못된 인물을 의심한 적이 있었다. 그 인물은 후일 DNA 비교로 무죄가 확인됐지만, 일시적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이러한 우려에 응답해, 미국 일부 주는 가계 DB 검색에 영장을 요구하는 법을 제정했다. 메릴랜드주(2021)와 몬태나주(2021) 가 첫 사례였다. GEDmatch 본사도 정책을 변경해, 2019년부터는 형사 수사 목적 검색에 사용자의 명시적 opt-in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크기는 줄었지만, 윤리적 정당성은 강화됐다.
가해자가 침묵해도
40년의 그림자, 4개월의 가계도, 한 형사의 24년. 골든스테이트 킬러 사건은 한 가지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가해자 본인이 침묵하더라도 그의 친척 한 명의 자발적 등록이 진실을 풀 수 있다 는 것. 디안젤로 본인은 한 번도 DNA를 자발적으로 등록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의 3-4촌 친척이 자신의 가계 추적을 위해 GEDmatch에 등록했고, 그 데이터가 디안젤로의 신원을 드러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완벽한 침묵”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디지털 흔적, 가족 관계, 자발적으로 공유된 데이터의 누적이 한 사람의 정체를 결국 드러낸다. 그 진실이 풀린 순간, 형사 수사의 새 시대가 시작됐다.
2018년 4월 24일 새크라멘토의 한 평범한 아침이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