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동안 이름조차 없던 유령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부의 거리에서 젊은 여성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며칠 뒤 그들은 골목과 공터에서 발견되었고, 하나같이 같은 방식으로 살해되어 있었다. 수사관들은 곧바로 동일범의 소행임을 직감했지만, 손에 잡히는 단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놀라운 사실은 이 범인이 무려 25년 동안 경찰의 눈앞에서 붙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소 10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 명의 용의자가 조사를 받았지만, 진범의 이름은 어떤 명단에도 오르지 않았다.
이 사건이 세계 수사 역사에 남은 이유는 단 하나다. 범인을 무너뜨린 것이 지문도, 목격자도, 자백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범인의 아들이 남긴 DNA 한 줄이 아버지를 살인마로 지목했다. 이것이 바로 그림 슬리퍼 사건, 그리고 가족 DNA 검색이라는 수사 기법의 탄생 이야기다.

잠에서 깨어난 살인마라는 별명
범행은 1984년부터 시작되어 1988년까지 이어지다가 돌연 멈췄다. 도시가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쉴 무렵, 무려 14년이 흐른 2002년부터 똑같은 수법의 살인이 다시 시작되었다. 같은 종류의 총기, 같은 방식의 범행이 되풀이되었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한 이 긴 공백 때문에, 언론은 그에게 소름 끼치는 별명을 붙였다. 바로 그림 슬리퍼(Grim Sleeper), 잠자는 살인마였다.
이 별명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었다. 14년이라는 공백은 수사팀을 혼란에 빠뜨렸다. 범인이 죽었는지, 감옥에 갇혔는지, 아니면 다른 도시로 떠났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2002년의 재개는 그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여전히 같은 동네를 배회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공포는 다시 거리를 뒤덮었다.
이웃들이 신뢰한 친절한 정비공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진범의 정체였다. 로니 데이비드 프랭클린 주니어(Lonnie David Franklin Jr.)는 로스앤젤레스 남부의 조용한 주택가에서 수십 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평범한 이웃이었다. 그는 한때 시 위생국에서 청소차를 몰았고, 심지어 경찰서 안에서 차량 정비 일을 맡은 적도 있었다.

이웃들에게 그는 고장 난 자동차를 척척 손봐 주는 친절한 아저씨였다. 골목에서 아이들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낡은 차를 공짜로 고쳐 주기도 했다. 누구도 그가 밤이 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수사팀이 25년 동안 수백 명의 용의자를 조사하는 내내, 그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 완벽한 위장의 가면 아래, 그는 자신의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서 범행을 이어 갔다.
25년의 사건 일지
사건의 시간표를 따라가 보면 그 규모가 드러난다. 1985년 첫 번째 희생자가 발견되면서 악몽이 시작되었고, 범행은 1988년까지 이어지다가 멈췄다. 바로 이 시기에 유일한 생존자가 나타났다. 총에 맞고도 살아남은 그녀는 범인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증언만으로는 이름을 찾아낼 수 없었다.

2002년, 잠들었던 살인마가 다시 깨어났다. 범행은 2007년 마지막 희생자를 끝으로 다시 멈췄다. 오랜 재수사 끝에 수사팀이 손에 쥔 것은 오직 현장에 남은 DNA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그 DNA와 일치하는 사람은 캘리포니아의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로니는 중범죄 전과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유전자 정보는 어디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 승부수, 가족 DNA 검색
2008년, 벽에 부딪힌 수사팀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현장 DNA를 데이터베이스와 곧바로 대조하는 대신,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가족을 거꾸로 추적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이 바로 가족 DNA 검색, 이른바 패밀리얼 서치(familial DNA search)다. 캘리포니아는 당시 이 기법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었다.

첫 번째 시도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그러나 2010년 4월 28일, 두 번째 검색에서 믿기 힘든 결과가 나왔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한 청년의 DNA가 현장 DNA와 절반가량 일치했던 것이다. 절반의 일치는 형제나 부모, 자식처럼 아주 가까운 혈육을 의미했다. 그 청년은 무기 소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유전자 정보가 등록된 크리스토퍼 프랭클린이었다.
그자가 아니라 그자의 피붙이
결과를 받아 든 수사관들은 순간 숨을 멈췄다. 문제는 그 청년이 첫 살인이 벌어졌을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범인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는 답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화면 속 청년의 아버지가 바로 진짜 그림 슬리퍼였다. 수사팀의 모든 시선이 한순간에 로니 프랭클린을 향했다.

이 순간은 미국 수사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가족의 유전자가 등록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작 데이터베이스에 없던 진범의 정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사팀에게는 아직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부분 일치는 방향을 가리킬 뿐, 법정에서 로니를 유죄로 만들기에는 부족했다.
버려진 DNA를 쫓다
이제 수사팀에게는 로니 본인의 DNA가 필요했다. 하지만 법원의 영장 없이 그의 DNA를 강제로 확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스스로 흔적을 흘리는 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른바 버려진 DNA(abandoned DNA) 전략이었다.

수사팀은 로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은밀하게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형사가 종업원으로 위장해 그가 식사하는 식당에 잠입했다. 로니가 먹다 남긴 피자 조각과 그가 사용한 식기가 조심스럽게 수거되었다. 그 위에 남은 침에서 DNA를 추출해 현장 증거와 정밀하게 대조한 결과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일치였다. 2010년 7월, 25년간 이름조차 없던 유령이 마침내 체포되었다.
22년을 견딘 유일한 생존자
이 사건에는 결코 잊혀서는 안 될 한 사람이 있다. 1988년, 그림 슬리퍼의 총에 맞고도 기적처럼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다. 그녀는 달리는 차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건졌고, 범인의 얼굴을 두 눈에 새기고 있었다.

오랜 세월 그녀의 증언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체포가 이루어진 뒤 그녀는 마침내 법정에 섰다. 22년의 세월을 홀로 견딘 한 여성의 기억이, 드디어 정의의 저울을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배심원단은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깊이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증언은 과학적 증거와 함께 로니를 옭아매는 결정적인 고리가 되었다.
역사를 바꾼 수사법
이 사건이 왜 역사가 되었는지 이해하려면 기존 DNA 수사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전통적인 DNA 수사는 오직 범인 본인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을 때에만 힘을 발휘했다. 로니처럼 전과 기록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현장에 DNA를 남겨도 영원히 익명의 유령으로 남을 수 있었다.

반면 가족 DNA 검색은 완전히 새로운 문을 열어젖혔다. 본인이 등록되어 있지 않더라도, 가까운 혈육 가운데 누군가가 걸리면 그 실을 따라 범인에게 닿을 수 있었다. 이 방법으로 연쇄살인범을 붙잡은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이었다. 한 사람의 유전자가 온 가족의 비밀을 여는 열쇠가 된 것이다. 이후 이 기법은 다른 미제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동시에 뜨거운 윤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남긴 숫자들과 최후
이 사건이 남긴 숫자들은 하나같이 무겁다. 로니 프랭클린이 앗아 간 목숨은 최소 10명이었고, 대부분 젊은 여성이었으며 그 안에는 15살 소녀도 있었다. 그의 범행은 1984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25년의 세월에 걸쳐 있었다.

2016년 5월 5일, 배심원단은 10건의 살인 모두에 대해 유죄를 평결했다. 그해 8월 10일, 법정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2020년 3월, 로니 프랭클린은 형 집행을 기다리던 감방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끝내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마치며 : 정의와 윤리의 경계
25년 동안 한 도시를 공포에 떨게 한 살인마는, 결국 자신의 핏줄에게 발목을 잡혔다. 그가 세상에 흘린 마지막 흔적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세상에서 지워 낸 셈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통쾌한 검거극으로만 남지 않는다. 죄를 짓지 않은 아들의 DNA로 아버지를 잡는 일은, 과연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가족 DNA 검색은 수많은 미제 사건을 풀 열쇠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유전 정보와 사생활을 어디까지 국가가 들여다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정의를 향한 이 한 줄의 유전자는, 지금도 세계의 법정에서 뜨거운 논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