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의 DNA가 지목한 범인
4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잡히지 않던 연쇄 범죄자가, 자신이 아닌 먼 친척의 DNA 한 조각에 정체를 드러냈다. 미국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골든스테이트 킬러 사건이다. 현장에는 분명 범인의 DNA가 남아 있었지만, 그 주인의 이름은 수십 년간 어둠 속에 있었다. 모두가 영영 못 잡을 것이라 여기던 그 순간, 수사는 전혀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도대체 가족의 DNA가, 어떻게 한 사람의 정체를 밝혀냈을까. 과학 수사가 한 시대의 미제를 푼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도시를 덮은 공포의 그림자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먼저 골든스테이트 킬러가 누구였는지 알아야 한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곳곳에서 끔찍한 범죄가 잇따라 벌어졌다. 한 정체불명의 남자가, 밤이면 평범한 가정집에 소리 없이 침입했다. 그는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고,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기 집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남자가 한때 경찰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낮에는 평범한 이웃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았다. 누구도 그의 두 얼굴을 짐작하지 못했다. 경찰은 오랜 세월 그를 쫓았지만, 매번 그림자만 잡았을 뿐이다. 도시 전체를 떨게 한 그 남자는, 그렇게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멈추지 않은 공포
그가 남긴 피해의 규모는, 몇 가지 숫자만으로도 가늠하기 어렵다. 그는 최소 12명을 살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50건이 넘는 강간과, 100건이 넘는 주거 침입을 저질렀다. 이 범죄들은 1976년부터 약 10년에 걸쳐 이어졌다. 수사가 거듭됐지만, 그의 정체는 끝내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렇게 사건은 40여 년 가까이 미제로 남았다. 수많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답 없는 세월을 견뎌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은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름 없는 DNA
수사가 거듭 벽에 부딪힌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수사관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이미 있었다. 바로 범행 현장에 남아 있던 범인의 DNA였다. 문제는 그 DNA가 누구의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DNA로 신원을 확인하려면, 비교할 대상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범인은, 어떤 범죄자 명단에도 올라 있지 않았다. 한때 경찰이었던 그는, 수사망을 교묘히 빠져나간 것이다. 수사관들의 손에는 범인의 유전 정보가 또렷이 쥐어져 있었다. 다만 그 정보에 이름표를 붙일 방법이, 도무지 없었던 것이다. 결정적 증거를 손에 쥐고도, 정작 범인의 얼굴은 보지 못하는 답답한 세월이 이어졌다.

DNA는 있지만 이름이 없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한 수사관은, 그 답답함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우리에겐 그의 DNA가 있었지만, 그의 이름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짧은 한마디에, 수십 년 수사의 좌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범인의 가장 은밀한 정보를 손에 쥐고도, 그것을 한 사람과 연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자물쇠는 있는데, 맞는 열쇠가 세상에 없는 상황과 같았다. 수사관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DNA에 이름을 붙여 줄 전혀 새로운 열쇠였다. 그리고 그 열쇠는, 뜻밖의 곳에서 나타났다.

가계도의 끝에서 찾은 진범
2018년, 수사관들은 마침내 전혀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그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이뤄졌다. 첫째, 그들은 범인의 현장 DNA를,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가계도 사이트에 올렸다.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유전 정보를 올리는, 공개된 데이터베이스였다. 둘째, 그 안에서 범인과 유전자가 일부 겹치는 먼 친척들이 발견되었다. 수사관들은 이 친척들을 실마리 삼아, 거대한 가계도를 그려 나갔다. 셋째, 나이와 지역, 성별 같은 조건으로 후보를 점점 좁혀 갔다. 수많은 가지를 따라가던 가계도는, 마침내 단 한 사람을 가리켰다. 한때 경찰이었던, 평범해 보이던 한 노인이었다. 본인의 DNA가 아니라, 가족의 DNA가 그를 끝내 찾아낸 것이다.

본인과 친척, 결정적 차이
이 수사가 혁명적이었던 이유는, 기존 방식과의 결정적인 차이에 있다. 한쪽에는 전통적인 DNA 대조 방식이 있었다. 이 방식은, 범인 본인의 DNA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돼 있어야만 작동했다. 등록된 적이 없는 범인은, 결코 잡을 수 없었다. 반면 다른 한쪽에는, 유전자 계보 수사라는 새 방식이 있었다. 이 방식은 범인 본인이 아니라, 그의 친척만 등록돼 있어도 된다. 친척의 DNA에서 출발해, 가계도를 따라 범인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본인이 아무리 꼭꼭 숨어도, 친척의 흔적까지 지울 수는 없다. 바로 그 점이, 수십 년 미제의 벽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40여 년의 기록
골든스테이트 킬러 사건은, 40여 년에 걸친 긴 추적의 기록이다. 그 흐름을 따라가 보면, 결정적인 전환점이 또렷이 보인다. 1976년 무렵, 그의 범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약 10년 동안, 그는 캘리포니아 곳곳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1986년 이후, 그는 거짓말처럼 범행을 멈추고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사건은 수십 년간 미제로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2018년 4월, 유전자 계보 수사가 마침내 그를 찾아냈다. 수사관들은 그가 무심코 버린 물건에서 DNA를 채취해, 현장의 것과 일치함을 확인했다. 그리고 2020년, 그는 법정에서 자신의 모든 범행을 인정했다. 40여 년을 끌어온 어둠이, 마침내 끝나는 순간이었다.

가장 무서운 건 평범함이었다
범인이 붙잡힌 뒤, 사람들이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그의 평범함이었다. 그는 괴물 같은 모습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을 법한 노인이었다. 한때 경찰이었고, 은퇴한 뒤에는 조용한 동네 주민으로 살았다. 이웃들은 그가 그런 범죄자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장 무서운 건 그가 너무도 평범했다는 사실이라고, 한 관계자는 착잡하게 떠올렸다. 그 말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이 사건은, 한 가지 묵직한 질문도 함께 남겼다. 범죄 수사를 위해, 일반인의 유전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옳은가 하는 물음이었다. 정의의 실현과 개인의 사생활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숫자로 보는 사건
이 사건을, 몇 가지 숫자로 정리해 보자. 골든스테이트 킬러의 범행은, 1976년 무렵부터 약 10년간 이어졌다. 그는 최소 12명을 살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의 정체가 밝혀지기까지는, 무려 40여 년이 걸렸다. 결정적 전환점은 2018년의 유전자 계보 수사였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방식이 알려진 뒤로 150건이 넘는 다른 미제 사건이 풀렸다는 사실이다. 한 사건의 해결이, 수많은 어둠을 함께 걷어 낸 셈이다.

미제를 푸는 새로운 열쇠
골든스테이트 킬러 사건이 의미 있는 이유는, 단지 한 명의 범인을 잡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사건은 수사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 놓았다. 그동안 수사는 범인이 실수로 흘린 단서나, 운 좋은 제보에 크게 기대 왔다. 그러나 유전자 계보 수사는, 범인이 아무 단서를 남기지 않아도 추적이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현장에 DNA 한 조각만 남아 있다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추적의 끈은 이어진다. 실제로 이 방식이 등장한 뒤, 수십 년 잠들어 있던 미제 사건들이 줄줄이 다시 열렸다. 오랜 세월 답을 기다려 온 피해자 가족들에게, 그것은 큰 위로가 되었다. 과학의 발전이, 끝난 줄 알았던 사건에 다시 빛을 비춘 것이다.

마치며
골든스테이트 킬러 사건은, 과학 수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미제가, DNA 한 조각으로 끝내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또 다른 숙제도 함께 남겼다. 내 유전 정보가,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추적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의를 위한 과학과, 개인의 사생활은 때때로 부딪힌다. 그 사이에서 어디에 선을 그을지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당신은 범죄 해결을 위해, 어디까지 유전 정보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