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을 버틴 암호, 그러나 이름은 없었다
어떤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은 안개에 싸인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제로 꼽히는 조디악 킬러 사건이 바로 그렇다. 1969년, 한 살인범은 캘리포니아의 신문사들로 340개의 기호로 이루어진 암호 한 장을 보냈다. 그는 그 안에 자신의 정체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FBI와 NSA, 해군의 암호 전문가들이 반세기 동안 매달렸지만 누구도 그 코드를 깨지 못했다. 그리고 2020년 12월, 마침내 암호가 풀렸다. 하지만 51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문장 어디에도 그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게임의 마지막 패는 처음부터 비어 있었던 것이다.

1968년, 연인의 길에서 시작된 공포
사건의 시작은 1968년 12월 20일 밤이었다. 캘리포니아 북부 베니시아의 레이크 허먼 로드, 연인들이 차를 세우곤 하던 외진 길에서 십 대 두 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베티 루 젠슨과 데이비드 패러데이였다. 처음에는 그저 한 건의 비극적인 강력범죄로 보였다. 동기도, 목격자도 분명하지 않았고, 사건은 빠르게 미궁 속으로 가라앉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여름, 같은 방식의 공격이 다시 일어났다. 1969년 7월 4일 독립기념일 밤, 밸레이오의 블루록 스프링스 공원 주차장에서 또 다른 연인이 총격을 당했다. 달린 페린은 숨졌고, 마이클 마조는 중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는 훗날 결정적인 목격자가 되지만,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이 두 사건이 한 사람의 소행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두 사건의 패턴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외진 곳에 멈춘 차, 그 안의 두 사람. 경찰은 비로소 깨달았다. 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연인들을 노리고 있었다.

암호로 협박한 살인범의 등장
공포가 본격화된 것은 1969년 8월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세 신문사로 똑같은 편지가 동시에 도착했다. 발신자는 자신이 그 살인의 범인이라 주장하며, 기호로 가득한 암호 한 장을 함께 보냈다. 408개의 기호로 이루어진 이 첫 번째 암호는 훗날 Z408이라 불리게 된다.
그는 단순히 범행을 자백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 암호를 신문 1면에 싣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언론을 직접 무대로 끌어들인 이 도발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미국 전역이 처음으로 이 살인범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무대 한가운데로 끌어내고 있었다.

평범한 부부가 일주일 만에 풀다
흥미롭게도 첫 번째 암호를 푼 것은 정부 기관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캘리포니아 살리나스에 살던 고등학교 교사 도널드 하든과 그의 아내 베티 하든이었다. 두 사람은 살인범이라면 분명히 죽인다는 의미의 단어를 즐겨 사용할 것이라 추측했다.
이들은 영어에서 가장 흔하게 겹쳐 나타나는 글자를 단서로 삼았다. 겹친 글자 다음에 특정 글자를 끼워 넣어 죽인다는 단어를 먼저 맞췄고, 거기서부터 실마리를 풀어 나갔다. 발표된 지 단 일주일 만인 1969년 8월 8일, 408개의 기호가 마침내 문장이 되었다. 전문 장비도 컴퓨터도 없이, 두 사람의 끈기와 추리만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해독된 문장이 드러낸 망상
그러나 풀린 문장은 수사관들을 더 깊은 혼란에 빠뜨렸다. 살인범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경험이라고 적었다. 사냥감을 쫓는 것보다 더 즐겁다고도 했다. 더욱 섬뜩한 것은 그의 믿음이었다. 그는 자신이 죽인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자신의 노예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그 세계를 일부러 철자를 틀린 단어로 적어 두었다. 이 의도적인 오타는 훗날 그의 정체를 추적하는 단서로도 분석되었지만, 끝내 결정적인 답을 주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약속했던 그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한 형사는 그가 단서를 주는 척하며 수사진을 비웃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스스로 조디악이라 이름 붙이다
첫 암호가 풀린 직후, 살인범은 다시 편지를 보냈다. 이번에는 자신을 부르는 이름을 직접 밝혔다. 그는 자신을 조디악이라 칭했고, 동그라미 안에 십자가가 그려진 기호를 서명처럼 사용했다. 이 기호는 곧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그의 편지는 점점 더 대담해졌다. 자신이 죽인 사람의 수를 점수처럼 세어 자랑했고, 경찰을 직접 도발하는 문장을 적었다. 때로는 더 풀기 어려운 새로운 암호를 예고하기도 했다. 신문사는 매일 그의 다음 편지를 기다려야 했고, 캘리포니아 전역은 불안에 휩싸였다. 한 도시의 연쇄 범죄가 미국 전체의 공포가 되어 가고 있었다.

풀린 암호와 풀리지 않는 암호
그러나 두 번째 암호는 첫 번째와 완전히 달랐다. 1969년 11월 8일, 그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로 새로운 편지를 보냈다. 이번 암호는 340개의 기호로 이루어져 있었다. 훗날 Z340이라 불리는 이 암호가, 이후 반세기 동안 누구도 넘지 못하는 벽이 된다.
첫 암호가 일주일 만에 풀린 것과 달리, 340자 암호는 모든 시도를 무력화했다. 같은 방식의 글자 빈도 분석은 통하지 않았다. 분석가들은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조디악은 기호의 순서를 비틀고, 줄을 어긋나게 배치해 추적을 따돌렸다. 단순한 치환이 아니라, 읽는 방향 자체를 뒤섞어 놓은 것이었다. 일주일 만에 무너진 코드가 있던 자리에, 이제는 51년을 버틸 코드가 들어섰다.

반세기 동안 이어진 실패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이 암호에 도전했다. FBI의 암호 분석 부서가 공식적으로 나섰고, NSA와 해군의 전문가들까지 매달렸다. 그러나 누구도 340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암호 기관들이 모두 실패한 것이다.
살인 자체도 미궁에 빠졌다. 1969년 10월 11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택시 기사 폴 스타인이 살해된 것을 끝으로, 조디악의 확인된 공격은 멈췄다. 그가 공격한 사람은 모두 일곱 명, 그중 다섯 명이 숨지고 두 명만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목격자가 있었고 몽타주도 만들어졌지만, 결정적인 체포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건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제로 굳어졌고, 수많은 용의자가 거론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확정되지 못했다.

2020년 12월, 마침내 풀린 코드
돌파구는 뜻밖의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데이비드 오랜착, 호주의 수학자 샘 블레이크, 벨기에의 암호 전문가 야를 판 에이커였다. 세 사람은 국적도 직업도 달랐지만 하나의 암호에 매달렸다.
이들의 접근은 영리했다. 판 에이커의 제안에 따라 오랜착은 암호를 세 부분으로 쪼갰다. 그리고 직접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무려 65만 가지의 배열 조합을 일일이 검토했다. 조디악이 줄과 방향을 뒤섞어 놓았다는 가설을 컴퓨터의 힘으로 검증한 것이다. 핵심은 그가 글자를 단순히 다른 기호로 바꾸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읽는 순서까지 대각선으로 비틀어 놓았다는 점이었다. 사람의 직관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방식이었고, 바로 그 점이 반세기 동안 전문가들을 좌절시킨 원인이었다. 마침내 2020년 12월 5일, 340자가 문장으로 풀렸다. 이들은 그 결과를 FBI의 암호 분석 부서에 제출했고, 일주일 뒤인 12월 12일 FBI는 그 해답이 정확하다고 공식 확인했다. 51년 만의 일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용의자들
조디악 사건이 반세기 넘게 대중의 관심을 끈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수많은 용의자가 거론되었지만, 단 한 명도 확정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장 오랫동안 유력하게 지목된 인물은 한 남성이었는데, 정황 증거는 무성했지만 결정적인 물증이 없었다. 필적 감정, 지문 대조, 후대의 DNA 분석까지 동원되었지만 어느 것도 결정적 일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 사건은 영화와 책, 다큐멘터리의 단골 소재가 되었고, 수많은 아마추어 수사관이 자신만의 가설을 내놓았다. 어떤 이들은 암호 안에 숨은 이름의 철자가 있다고 주장했고, 또 어떤 이들은 전혀 다른 인물을 지목했다. 그러나 추측이 늘어날수록 진실은 오히려 더 멀어지는 듯했다. 이는 미제사건이 가진 위험이기도 하다. 확증 없는 지목은 무고한 사람에게 평생의 낙인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자백, 그리고 여전히 열린 파일
그러나 51년 만에 드러난 문장은 또 한 번 모두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340자 안에는 그의 이름도, 정체를 가리킬 어떤 단서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가스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 이후의 낙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적었을 뿐이었다. 반세기를 버틴 암호가 끝내 알려준 것은, 그가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이었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암호는 풀렸지만 범인은 여전히 그림자 속에 있다. 그가 살아 있다면 이미 노인이 되었거나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조디악 사건의 파일은 지금도 닫히지 않았다. 오심의 가능성, 잘못 지목된 용의자들, 그리고 끝내 검증되지 못한 수많은 가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흔히 암호가 풀리면 모든 비밀이 드러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조디악은 정반대를 보여주었다. 그는 가장 풀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암호를 던져 놓고, 그 안에 정작 가장 중요한 답은 넣지 않았다. 51년의 추적은 결국 그의 손바닥 위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이는 수사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서늘한 교훈을 남긴다. 단서가 많다고 해서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범인이 직접 흘린 단서조차 또 하나의 함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건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의 작은 기억 하나, 다락방에서 발견된 오래된 편지 한 장이 마지막 퍼즐을 맞출지도 모른다. 51년의 침묵을 깬 것이 정부 기관이 아니라 세 명의 평범한 시민이었듯, 진실의 마지막 한 조각도 가장 의외의 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조디악 킬러의 파일은 영원히 열린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