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1월의 그 새벽에 일어난 일
2022년 11월 13일 새벽 4시 무렵, 미국 아이다호주 모스코의 학생 임대 주택 2층 침실에서 대학생 4명이 자고 있던 침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는 매디슨 모건과 케일리 곤칼베스, 자나 카르노들과 이산 채핀이었다. 이들 중 세 명은 같은 사교 클럽에 속해 있었고, 채핀은 자나의 남자친구로 그날 밤 우연히 그 집에 머물고 있었다. 같은 집 1층에 살던 두 명의 룸메이트는 헤드폰을 끼고 잠들어 새벽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이 다음 날 정오 무렵 911에 신고할 때까지 사건은 8시간 가까이 발견되지 않았다.
2. 사건 현장에 남은 단 하나의 단서
출동한 모스코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외부 침입 흔적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1층 슬라이딩 도어가 잠겨 있지 않았다는 점이 유일한 진입 가설이었다. 그러나 매디슨 모건의 침대 옆 매트리스 위에서 결정적인 물건이 발견되었다. 검은색 가죽 칼집이었다. 칼집 안쪽에는 “Ka-Bar United States Marine Corps”라는 영문 새김이 있었고, 단추 부분에 가느다란 액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정작 그 안에 있어야 할 전투용 칼날은 어디에도 없었다. 범인이 가지고 떠난 것이다. 모스코 경찰서장 제임스 프라이는 즉시 그 칼집을 아이다호주 범죄수사연구소로 보냈고, 단추 옆 액체에서 한 점의 남성 유전자가 추출되었다.

3. 코디스 무일치와 막다른 길
추출된 유전자는 곧바로 미 연방수사국이 운영하는 코디스에 조회되었다. 코디스는 미국 전역의 범죄자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로, 미국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강력 범죄가 이 단계에서 해결된다. 그러나 칼집 DNA는 코디스에서 일치하는 인물을 찾지 못했다. 이는 범인이 단 한 번도 미국에서 강력범죄로 체포되거나 유전자 시료가 채취된 적이 없다는 의미였다. 사건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 수사팀에게는 사실상 직접적인 단서가 사라진 것과 같았다.

4. 흰색 엘란트라 22,000대
경찰은 사건 현장 인근의 모든 감시 카메라 영상을 수집했다. 새벽 3시 26분부터 4시 20분 사이에 그 골목을 세 번 지나간 흰색 차량 한 대가 포착되었다. 차종 분석 결과 2011년에서 2016년식 흰색 현대 엘란트라였다. 다만 차량 번호판은 어느 카메라에도 또렷이 잡히지 않았다. 연방수사국과 모스코 경찰은 미국 전역에 등록된 해당 연식의 흰색 엘란트라 차주 명단을 모두 받았다. 그 숫자는 약 22,000대였다. 워싱턴주와 아이다호주 인근으로 범위를 좁혀도 수천 대가 남았다. 수사팀은 한 대씩 차주의 알리바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수개월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5. 유전자 계보학의 등장
12월 초, 수사팀은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유전자 계보학이었다. 일반 시민들이 조상을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업로드한 공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GEDmatch나 FamilyTreeDNA의 데이터에 사건 현장 DNA의 가계도 정보를 대조하는 수사 기법이었다. 2018년 캘리포니아의 골든스테이트 킬러가 이 기법으로 44년 만에 체포된 후 미국 전역의 콜드케이스 해결에 활용되고 있었다. 연방수사국은 칼집 DNA를 유전자 계보학 전문 회사 오트람에 의뢰했다. 약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한 가족의 가계도가 도출되었다. 그 가계도에서 사건 현장 DNA의 기증자와 가까운 친족 관계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었다. 펜실베이니아주 알바니타운십 출신의 28세 남성, 브라이언 코버거였다.

6. 캠퍼스 간 15분 거리
코버거의 이름이 떠오른 순간 모든 조각이 맞기 시작했다. 그는 워싱턴주립대 풀먼 캠퍼스의 형사사법학 박사과정 1학년 학생이었다. 워싱턴주립대 풀먼 캠퍼스는 사건 현장 아이다호 모스코에서 차로 단 15분 거리에 있었다. 두 도시는 주 경계를 사이에 둔 사실상 한 생활권이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코버거의 학문적 배경이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디소스 대학교 학부 시절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시각에서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 현장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주제로 학술 논문을 작성했다. 또한 그는 디소스 대학의 학부생 모집 설문조사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는데, 그 설문지는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의 생각과 감정”을 묻는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7. 부모집 쓰레기통의 증거
수사팀은 함부로 코버거를 체포할 수 없었다. 그가 칼집 DNA 기증자와 직접 친족 관계라는 것을 증명할 표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2월 중순부터 코버거는 펜실베이니아 알바니타운십의 부모집을 방문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연방수사국은 부모집을 비밀리에 감시하기 시작했다. 2022년 12월 27일 밤, 가정 쓰레기 수거일 전날, 수사 요원들은 길가에 내놓은 쓰레기 봉투를 회수했다. 그 안에서 그의 아버지 마이클 코버거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자 표본을 확보했다. 연구소 분석 결과 칼집 DNA와 아버지 표본 사이의 친자 관계 확률이 99.9998 퍼센트로 산출되었다. 즉 칼집 DNA의 기증자는 마이클 코버거의 친아들일 확률이 99.9998 퍼센트라는 의미였다.

8. 12월 30일 새벽의 체포
2022년 12월 30일 새벽 1시 30분, 연방수사국 인질구출팀이 알바니타운십의 코버거 부모집 문을 두드렸다. 코버거는 부엌에서 라텍스 장갑을 낀 채 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체포되었다. 같은 시간 워싱턴주 풀먼의 그의 아파트도 수색되었다. 아파트에서는 침대 시트 사이에서 핑크색 머리카락 한 가닥이 발견되었고, 이는 후에 희생자 중 한 명의 모발과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일치 가능성이 검토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흉기, Ka-Bar 전투용 칼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코버거는 사건 발생 직후 차로 펜실베이니아까지 약 4,000 킬로미터를 직접 운전해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흉기를 처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9. 휴대전화가 그린 12회의 사전 방문
체포 후 검찰은 다른 증거를 차근차근 쌓아 올렸다. 가장 강력한 보조 증거는 코버거의 휴대전화 위치 데이터였다. 사건 발생 이전 약 4개월 동안 그의 휴대전화는 사건 현장 인근 반경 1.6 킬로미터 안에 12회 이상 진입한 기록이 있었다. 진입 시각은 대부분 밤 10시 이후의 심야 시간대였다. 이는 코버거가 단순한 우발적 침입이 아닌 장기간의 사전 답사를 했다는 정황 증거였다. 사건 당일 새벽 그의 휴대전화는 사건 약 2시간 전에 풀먼의 자택을 떠나 모스코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사건 발생 시각 정확히 한 시간 동안 휴대전화가 통신망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켜졌을 때는 풀먼으로 돌아가는 경로를 그렸다.

10. 생존자의 진술과 키 188센티미터
사건 현장에 있던 1층의 두 룸메이트 중 한 명인 디뮤리 마틴센은 새벽에 잠시 깨어났을 때 검은 옷에 마스크를 쓴 키 큰 남성이 자신의 방 앞 복도를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그녀는 두려움 때문에 침대 안에서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디뮤리가 묘사한 인물의 신장은 약 180센티미터 이상이었다. 코버거의 신장은 188 센티미터로 그 진술과 일치했다. 디뮤리의 진술은 직접 범인을 식별하지는 못했지만, 사건 시각에 그 집에 한 남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했다. 이 진술은 휴대전화 위치 데이터와 함께 정황 증거의 그물을 더욱 촘촘하게 만들었다.

11. 2025년 7월의 형량 거래와 동기의 침묵
재판은 처음 사형을 구형하는 1급 살인 4건의 본격 공판이 2025년 8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직전인 2025년 7월 2일, 사건은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했다. 코버거가 검찰과 형량 거래에 합의한 것이다. 그는 4건의 1급 살인과 1건의 주거침입 혐의를 모두 인정하는 대신 사형을 면제받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 4회와 추가 10년형을 선고받았다. 7월 23일 선고 공판에서 판사 스티븐 히플러는 코버거에게 동기를 물었다. 코버거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직접 법정에서 의견 진술을 하며 그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케일리 곤칼베스의 아버지 스티브는 “네가 누리려 했던 박사학위를 너는 영영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12. 유전자 계보학의 양면
아이다호 사건은 유전자 계보학이 미국 수사의 새로운 표준이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골든스테이트 킬러 이후 약 7년 만에 이 기법은 강력범죄 수사에서 더 이상 예외가 아닌 일반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시민의 유전자 데이터를 수사기관이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논쟁도 함께 시작되었다. 코버거의 변호인단은 재판 과정에서 유전자 계보학으로 확보한 단서의 적법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변호인측은 GEDmatch 데이터베이스의 이용약관이 수사 활용을 명시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던 시점에 자료가 조회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부모집 쓰레기에서 확보한 표본이 적법한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미국 헌법상 길가에 내놓은 쓰레기는 소유 의사가 포기된 것으로 간주된다는 기존 판례를 따른 것이다. 이 사례는 향후 비슷한 수사 기법의 적법성 판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13. 끝내 답해지지 않은 한 가지 질문
한 점의 DNA가 22,000대의 흰색 차량 가운데서 한 명을 골라냈고, 4건의 살인은 단 6주 만에 용의자를 갖게 되었다. 2년 8개월 만에 사건은 법적으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끝내 답해지지 않은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왜였는가. 코버거가 왜 그날 밤 그 집을 골랐는지, 4명의 학생과 어떤 접점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검찰은 단 한 명의 피해자와 코버거 사이에 어떤 사전 관계도 입증하지 못했다. 일부 학자들은 그가 자신의 박사 논문을 위한 일종의 실험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이는 추론에 불과하다. 또 다른 가설은 그가 어느 한 명의 피해자를 우연히 본 후 일방적인 집착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가설도 4명을 같은 새벽에 함께 노렸다는 점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코버거는 종신형 4회 안에서 그 답을 영원히 감출 수도 있다. 한 칼집과 한 점의 DNA가 사람의 정체는 밝혀냈지만, 사람의 마음은 끝까지 보여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