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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만에 이름을 되찾다: 배어브룩 드럼통 미제사건과 유전자 계보 수사

34년 만에 이름을 되찾다: 배어브룩 드럼통 미제사건과 유전자 계보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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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 발견된 두 개의 드럼통

배어브룩 사건은 미국 범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기이한 미제 중 하나로 꼽힌다. 1985년 11월, 미국 뉴햄프셔주 앨런스타운의 배어브룩 주립공원은 늦가을의 정적에 잠겨 있었다. 한 사냥꾼이 숲을 헤매다 낙엽 사이에 버려진 낡은 금속 드럼통 하나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성인 여성 한 명과 어린 소녀 한 명의 유해였다. 경찰은 온 힘을 다해 신원을 밝히려 했지만 어디에서도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이름도 사연도 없이 미제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2000년, 같은 숲 불과 90미터 떨어진 곳에서 또 하나의 드럼통이 발견되었고, 그 안에는 또 다른 어린 두 소녀가 잠들어 있었다. 두 번째 드럼통의 발견은 수사관들을 더 깊은 혼란에 빠뜨렸다. 15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장소에 두 개의 드럼통이 놓였다는 것은, 범인이 이 숲을 잘 알고 오랫동안 드나들었음을 뜻했다. 네 명의 피해자가 서로 어떤 관계인지, 왜 이 외딴 숲이 선택되었는지, 그 무엇도 분명하지 않았다. 하나의 숲, 두 개의 드럼통, 그리고 네 명의 이름 없는 피해자. 이것이 훗날 배어브룩 살인사건이라 불리게 될 미제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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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가장 먼저 사람들을 사로잡은 의문은 도대체 이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네 사람은 한 가족처럼 보였지만 그 어떤 실종 신고와도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성인 여성은 20대에서 30대로 추정되었고, 세 소녀는 이제 겨우 초등학생 나이였다. 수사관들은 이들의 얼굴을 복원한 그림을 전국에 배포했지만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네 사람은 두꺼운 미제 서류 속의 번호로만 존재했다. 누군가의 딸이자 자매였을 그들에게는 돌아갈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이야말로 이 사건을 미국에서 가장 가슴 아픈 미제 중 하나로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며 이 사건은 여러 다큐멘터리와 팟캐스트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네 사람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얼굴을 복원한 그림 속 소녀들은 어딘가 낯익은 듯하면서도 끝내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았다. 그들의 이름을 되찾아 주려는 노력은 계속되었지만,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그렇게 배어브룩의 네 사람은 오랫동안 미국 미제사건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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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수사의 한계

수사관들이 처음 기댈 수 있었던 것은 실종자 명단과의 대조였다. 그러나 아무리 명단을 뒤져도 네 사람과 일치하는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절망적이었다. 애초에 이들의 실종을 신고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 전체가 한꺼번에 사라졌으니, 그들을 찾아 나설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문 대조도, 치아 기록 대조도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20세기의 수사 기술은 이미 세상에 기록된 사람만을 찾아낼 수 있었고, 처음부터 기록되지 않은 사람 앞에서는 무력했다. 이 한계는 배어브룩 사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전역에는 신원조차 알 수 없는 무명의 유해가 수만 구에 이르며, 그중 상당수가 실종 신고가 없어 영영 이름을 되찾지 못한 채 잠들어 있다. 배어브룩의 네 사람 역시 그렇게 잊혀질 뻔했다. 수사관들은 옷가지의 실오라기 하나까지 분석하고, 유해의 특징을 세밀히 기록했지만, 그 어떤 단서도 이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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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유해에서 뽑아낸 유전자

돌파구는 유전자 계보라는 새로운 과학에서 열렸다. 오랜 세월 동안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네 사람의 신원을 조금도 밝혀내지 못했지만, 유전자 계보 기술은 손상된 유해에서도 온전한 유전자 지도를 복원해 냈다. 이것은 단순한 명단 대조가 아니라, 부서진 조각을 이어 붙여 한 사람의 뿌리를 되짚는 정교한 작업이었다. 연구진은 복원한 지도를 공개 데이터베이스에 올려 피가 섞인 먼 친척을 찾아 나섰다. 수십 년을 침묵하던 유해가 마침내 자신의 뿌리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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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 조사자와 계보 전문가의 집념

이 사건의 돌파구를 연 것은 놀랍게도 정부 기관이 아니라 한 시민 조사자와 한 계보 전문가였다. 평범한 아마추어 수사광이 오래된 자료를 파고들어 결정적인 단서의 실마리를 붙잡았고, 그와 손잡은 유전자 계보 전문가가 방대한 가계도를 그려 나갔다. 두 사람은 일치한 친척들의 족보를 한 세대씩 거슬러 올라가며 잊혀진 가족의 흔적을 추적했다. 국가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두 사람의 집념 앞에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시민의 힘과 새로운 과학이 만나 만들어 낸 기적과도 같은 협업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을 파고든 계보 전문가가 훗날 골든스테이트 킬러 사건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배어브룩에서 다져진 유전자 계보 수사의 방법론은, 이후 미국 수사 역사를 바꾸는 강력한 무기로 발전했다. 한 시민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추적이, 결국 법의학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문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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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밝혀진 범인, 테리 라스무센

흥미롭게도 이 사건은 피해자보다 범인이 먼저 밝혀졌다. 2017년, 유전자 계보 기술은 사상 처음으로 한 범죄 용의자를 지목해 냈고, 그가 바로 테리 페더 라스무센이었다. 라스무센은 살아생전 열 개가 넘는 가명을 쓰며 여러 주를 떠돈 연쇄살인범이었다. 그는 이름을 바꾸고 신분을 세탁하며 오랜 세월 법망을 피해 다녔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전자만은 결코 바꿀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이미 2010년, 또 다른 살인죄로 복역하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뒤였다. 라스무센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미로였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이름을 댔고, 직장과 거처를 수시로 옮기며 흔적을 지웠다. 여러 여성과 아이들이 그의 곁에서 사라졌지만, 신분을 바꿔 가며 살아온 탓에 오랫동안 그 누구도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특정하지 못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배어브룩과의 연결이 밝혀졌다면 사건의 전모가 더 드러났을지도 모르지만, 진실의 상당 부분은 그와 함께 무덤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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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만에 돌아온 세 사람의 이름

그리고 2019년, 마침내 세 사람이 34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성인 여성은 말리스 허니처치였고, 두 소녀는 그녀의 딸 마리와 세라였다. 세 모녀는 1978년 캘리포니아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이었다. 오랜 세월 그들을 추적해 온 수사관들에게 이 순간은 형언할 수 없는 벅참이었다. 수십 년 동안 번호로만 불리던 세 사람이 다시 누군가의 딸이자 자매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 잠들어 있던 마지막 한 소녀의 정체는 또 다른 오랜 수수께끼로 남았다. 이 마지막 소녀는 범인 라스무센의 친딸로 추정되었지만, 그녀의 이름은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가계를 따라가면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던 세 모녀와 달리, 이 소녀는 어느 가계와도 쉽게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이름을 돌려주기까지는 다시 오랜 세월과 더 정교해진 기술이 필요했다. 한 사건 안에서도 누군가는 비교적 빨리, 누군가는 훨씬 더디게 이름을 되찾는다는 사실은 이 비극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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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유해, 정반대의 결말

두 시대의 수사가 똑같은 유해를 두고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맞았다는 점은 이 사건의 핵심을 관통한다. 과거의 방식은 이미 어딘가에 기록된 실종자 명단과 대조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세 모녀는 애초에 실종 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아 옛 방법으로는 영원히 찾을 수 없었다. 반면 유전자 계보 방식은 피해자 본인이 아니라 그의 먼 친척을 겨냥했다. 단 한 번도 명단에 오른 적 없는 사람조차 친척이 남긴 흔적을 통해 되찾을 수 있었다. 같은 유해였지만 그것에 다가서는 각도 하나가 34년의 침묵을 갈라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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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보는 사건

이 사건이 남긴 숫자들은 저마다 서늘한 무게를 지닌다. 낡은 금속 드럼통은 모두 두 개, 그 안에는 네 명의 피해자가 담겨 있었다. 첫 발견에서 세 모녀의 신원이 밝혀지기까지는 무려 34년이 걸렸다. 범인 라스무센은 열 개가 넘는 가명 뒤에 자신을 숨겼고, 이미 2010년 다른 살인죄로 복역하다 사망한 뒤였다. 결국 그는 배어브룩 사건으로 정의의 심판대에 서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피해자들만은 마침내 이름을 되찾았고, 그것이야말로 이 오랜 수사가 거둔 진짜 승리였다. 범인이 이미 죽어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수사의 목적이 오직 처벌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어브룩 사건은 조용히 일깨웠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돌려주고, 흩어진 가족을 다시 이어 주며, 오래 방치된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 그것 역시 정의가 해야 할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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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

34년은 한 사람의 존재가 통째로 지워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부서진 유해 속에 새겨진 유전자만은 끝내 그 세월을 견뎌 냈다. 배어브룩 사건은 유전자 계보 수사가 단지 범인을 잡는 도구를 넘어, 잊혀진 피해자에게 이름을 돌려주는 기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 방식은 이후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무명의 유해에 신원을 되찾아 주는 열쇠가 되었다.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존재를 세상에 다시 새겨 넣는 일일지도 모른다. 배어브룩 사건이 세상에 남긴 가장 큰 울림은, 어쩌면 이 질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름을 잊고 살아가는가. 미국 전역의 법의학 기관은 배어브룩의 성공 이후, 창고에 잠들어 있던 수천 구의 무명 유해에 다시 유전자 계보 분석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매년 새로운 이름들이 어둠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오래 닫혀 있던 가족의 문을 다시 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름 없이 잠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을 불러 줄 목소리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과학은, 그 목소리가 되어 주기 위해 오늘도 지치지 않고 어둠 속을 조용히 더듬어 나가고 있다. 배어브룩의 네 사람이 되찾은 이름은, 그 길고 험난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하나의 이정표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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