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았던 범인
한 여자의 DNA가 있었다. 살인이 벌어진 집에서도, 빈집을 턴 창문에서도, 심지어 국경 너머 다른 나라의 범죄 현장에서도 똑같은 유전자가 검출됐다. 무려 40개의 사건이 오직 이 하나의 유전자 코드로 연결됐고, 독일 경찰은 그녀에게 3억 원이 넘는 현상금을 걸었다. 유럽 전역의 수사관 수백 명이 15년 동안 그녀 하나를 쫓았다. 그러나 이 거대한 추적의 끝에서 수사팀이 마주한 것은, 범인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믿기 힘든 진실이었다. 세계 법의학 역사에서 가장 값비싼 착오로 기록된 ‘하일브론의 유령’ 사건, 독일에서는 ‘얼굴 없는 여자’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되짚어 본다.
1993년, 찻잔에 남은 낯선 세포
이야기는 1993년 봄, 독일 남서부의 조용한 도시에서 시작된다. 62세의 한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사라진 물건도 거의 없어, 수사는 초기부터 벽에 부딪혔다. 감식반은 현장을 샅샅이 훑어 아주 작은 흔적 하나를 채취했다. 부엌에 놓인 찻잔의 손잡이, 그 미세한 자리에서 낯선 여성의 세포가 검출된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 어디에도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유전자 감식은 도입 초기였고, 일치자가 없는 프로필은 훗날을 기약하며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 두는 것이 전부였다. 사건은 단서를 찾지 못한 채 서류함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바로 그 유전자 코드가 앞으로 15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되살아나게 된다.
엉뚱한 곳에서 되살아난 유전자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유전자 코드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계속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해에는 창고를 턴 절도 현장의 깨진 유리 조각에서, 다른 해에는 훔친 차량의 운전대에서 똑같은 여성의 세포가 나왔다. 처음에는 우연으로 여겼다. 그러나 일치 통보가 한 건, 두 건, 열 건을 넘어서자 수사관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절도, 차량 절도, 마약 관련 범죄, 그리고 강력 사건까지 범행의 성격은 도무지 하나로 묶이지 않았다.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프랑스 국경 지대를 넘나들며 흔적은 점점 늘어났다. 그럼에도 이 사건들을 잇는 유일한 실은 단 하나, 그 여성의 유전자뿐이었다. 서로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범죄들이 하나의 코드로 꿰어지자, 수사팀은 전례 없는 유형의 범죄자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얼굴 없는 여자
언론은 그녀를 ‘얼굴 없는 여자’, ‘하일브론의 유령’이라 불렀다. 프로파일러들은 혼란에 빠졌다. 한 인물이 좀도둑질부터 강력 범죄까지, 수십 년에 걸쳐 이렇게 다양한 짓을 저지르는 경우는 전례가 없었다. 특정한 수법도, 공범과 움직이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그 많은 현장 어디에서도 그녀를 봤다는 목격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었다. 몽타주를 만들 얼굴도, 추적할 동선도 없었다. 오직 실험실 데이터 위에만 존재하는 범죄자, 유전자만 실재하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이 기묘한 사건은 곧 더 심각한 국면으로 넘어간다.
2007년, 경찰관이 쓰러진 날
2007년 4월, 독일 하일브론의 한 주차 공간에서 근무 중이던 젊은 여성 경찰관이 순찰차 안에서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함께 있던 동료 경찰관도 크게 다쳤다. 동료 경찰의 죽음은 독일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고, 감식반은 순찰차를 샅샅이 조사했다. 그리고 차량에서 또다시 그 유전자가 검출됐다. 얼굴 없는 유령이 이번에는 경찰을 노린 것처럼 보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사는 단순한 미제를 넘어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됐고, 전례 없는 규모로 확대됐다. 사건 현장의 도시 이름을 따 ‘하일브론의 유령’이라는 별칭이 굳어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유럽 최대의 수배
경찰관 피습 이후 독일 당국은 이 여성에게 3억 원이 넘는 현상금을 걸었다. 특별 수사팀이 꾸려졌고 수천 건의 대조 시료가 분석됐다. 심리 전문가들은 그녀가 특정 집단 출신일 것이라거나 남장을 하고 다닐 것이라는 온갖 가설을 쏟아냈다. 전화 제보가 밀려들었고 수백 명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수사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언론은 연일 이 정체불명의 여성을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그물을 넓게 던져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유력해 보이던 단서들은 확인만 하면 번번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유럽 최대 규모의 인력과 예산이 투입됐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맞지 않는 조각들
추적이 길어질수록 앞뒤가 맞지 않는 점들이 쌓여 갔다. 유전자는 40개 현장에 있었지만 그녀를 본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같은 날 서로 멀리 떨어진 두 도시의 현장에서 동일한 세포가 나온 적도 있었다. 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여성이 있을 이유가 없는 범죄에서도 그녀의 흔적이 나왔다. 노련한 수사관들조차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초인이거나 유령이어야 했다. 몇몇 회의적인 수사관은 조심스럽게 다른 가능성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가 쫓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에 생긴 어떤 착오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있을 수 없는 검사 결과
2009년 3월, 프랑스 국경 근처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감식반은 그의 손끝에서 유전자를 채취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신원 확인 절차였다. 그런데 며칠 뒤 돌아온 결과가 실험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분명히 남성의 손가락에서 채취했는데 검출된 유전자는 그 얼굴 없는 여자, 하일브론의 유령이었다. 남자의 손에서 여자의 유전자가 나온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결과였다. 재검사를 해도 결과는 같았다. 바로 이 모순, 생물학적으로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이 한 건의 결과가 15년 묵은 수수께끼의 실밥을 잡아당겼다. 감식 책임자는 한 가지 무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 어쩌면 문제는 범인이 아니라 그 유전자를 채취한 도구 자체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도구 속에 숨어 있던 진실
감식팀은 곧바로 실험 도구들을 되짚기 시작했다. 유전자를 채취할 때 쓰는 면봉, 바로 그것이 의심의 중심에 섰다. 이 면봉들은 의료용으로 세균을 없앤 제품이었지만, 사람의 유전자까지 없앴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균을 죽이는 살균과 유전자를 제거하는 처리는 전혀 다른 공정이었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의 세포가 이미 면봉에 묻은 채로 각 경찰서에 배송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여러 지역이 같은 회사의 면봉을 썼다면, 서로 무관한 현장에서 똑같은 유전자가 나온 이유가 자연스럽게 설명됐다. 같은 날 두 도시에서 동시에 흔적이 나온 것도, 남성의 손끝에서 여성의 유전자가 나온 것도 모두 하나의 원인으로 풀렸다. 수사팀은 이제 그 세포의 진짜 주인을 찾아 나섰다.
유령의 정체
조사 결과 이 면봉들은 유럽 여러 나라 경찰서에 공급되던 한 회사의 제품이었다. 그리고 그 유전자의 주인은 공장에서 면봉을 포장하던 한 여성 노동자였다. 그녀는 평범하게 일하며 자기 세포를 무심코 면봉에 남겼을 뿐이었다. 그 미세한 흔적이 수백 개의 면봉을 타고 세 나라 경찰서로 퍼져, 40개의 무관한 현장에서 마치 한 범인의 소행처럼 나타난 것이다. 살인도, 절도도, 그 어떤 범죄도 그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유럽 최대의 수배 명단에 올라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15년 동안 유럽이 총력을 기울여 쫓은 세기의 여성 범죄자는, 단 한 건의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대륙을 다시 쓴 작은 면봉
진실이 밝혀지자 파장은 엄청났다. 15년의 시간과 막대한 예산, 수많은 수사관의 노력이 존재하지 않는 범인을 쫓는 데 쓰였다. 그동안 각 사건의 진짜 단서들은 유령의 그림자에 가려 제대로 조사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이 오염 때문에 실제 범인들이 엉뚱한 유전자 뒤에 가려졌을 가능성이었다. 이 사건은 과학수사가 절대적 진실이 아니라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이후 유럽 각국은 유전자 채취 도구가 사람의 세포까지 완전히 제거된 것인지 반드시 인증하도록 기준을 바꿨다. 이른바 ‘유전자 무오염 인증’을 거친 도구만 현장에서 쓰이게 된 것이다. 작은 면봉 하나가 대륙 전체의 수사 체계를 다시 쓰게 만든 셈이다.
하일브론의 유령 사건은 극단적이지만, 유전자 오염 자체는 결코 드문 문제가 아니다. 유전자 감식 기술이 극도로 예민해질수록, 아주 미량의 세포만 섞여도 엉뚱한 결과가 나올 위험은 오히려 커진다. 실험실 직원의 피부 세포, 채취 도구에 남은 흔적, 심지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입자까지 결과를 뒤흔들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감식 현장에서는 채취자와 분석자의 유전자를 미리 등록해 두고, 결과에서 이를 걸러 내는 절차가 표준이 됐다. 이 모든 안전장치의 상당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던 한 여자를 15년간 쫓은 뒤에야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곱씹어 볼 만하다. 하일브론의 유령은 어떤 범인도 잡지 못했지만, 역설적으로 이후 수많은 진짜 사건의 감식 신뢰도를 끌어올린 셈이 됐다. 하나의 착오가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은, 바로 그 착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한 제도였다.
마치며: 확신의 그림자
하일브론의 유령은 누구도 해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공장에서 면봉을 포장하던 노동자였을 뿐이다. 우리는 흔히 과학이 내놓은 증거를 흔들리지 않는 진실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 확신이 얼마나 위태로울 수 있는지를 조용히 일깨워 준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그 데이터가 어디서 왔는지를 놓치는 순간 우리는 유령을 쫓게 된다. 완벽해 보이는 증거일수록, 그 증거가 만들어지는 과정 전체를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사건의 역설적인 가르침이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는 잘못된 확신 위에 쌓인 미제 사건들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가장 확실해 보이는 증거가 때로는 가장 위험한 함정이 된다는 사실, 그것이 이 사건이 남긴 가장 무거운 유산이다.